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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官治, 나쁜 官治
관료 우선에 끼리끼리 나눠먹기가 나쁜 관치
공공기관장에 고위 관료 출신 많지만 경영은 엉망
박 대통령, 전문가 발탁으로 관치 비난에서 자유로워야
2013년 07월 04일 (목) 14:23:24 방경호(언론인) webmaster@fnplus.co.kr

   
▲ 방경호(언론인)
‘관치(官治)’하면 관치금융과 낙하산인사를 떠올리게 되는 등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더구나 민주정부가 들어서고 민간기업과 민간부문의 엘리트들이 국가산업과 경제사회를 주도하는 상황에서 ‘좋은 관치’란 존재해서도 안되고 적절한 표현도 아니다.

특히 자율이 기반인 민간영역에 있어 관치란 각종 규제를 추가해 ‘나쁜 관치’를 초래하게 된다. 오히려 최근엔 민간영역에 우수하고 유능한 전문인력이 더 많아 거꾸로 관료사회가 민간으로부터 수혈을 받아야할 것이라는 주장도 있고, 성공한 사례도 적지 않다.

얼마 전 대통령의 경제수석비서관이 논란을 빚고 있는 금융기관장 물갈이와 관련해 ‘좋은 관치도 있을 수 있다’는 괴상한 발언을 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그는 NH농협금융지주 회장 선임과 관련해 “모피아(옛 재경부 관료와 마피아의 합성어) 출신이 민간과 경쟁해 성공한 CEO(최고경영자)가 됐는데, 이 사람을 불러오면 나쁜 것이냐”며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는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 금융기관장 물갈이에 모피아 출신들이 줄줄이 낙점되며 관치금융 부활의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어서 이는 마치 청와대가 ‘낙하산 인사’를 옹호하는 듯한 신호로 비쳐졌다. 그의 말대로 당당하게 민간과 경쟁해 성공한 모피아가 있는지 의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밝힌 지난 2012년 국가경쟁력 평가에 따르면 한국 금융시장의 성숙도는 144개국 가운데 71위에 머물렀다. 그러자 즉각 정부는 물론, 여ㆍ야 정치권에서도 부적절한 발언이라며 몰매가 쏟아졌다.

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총괄 보좌하는 경제수석의 입장에서 결코 해서는 안 될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관치금융은 정부의 금융 정책을 효율적으로 구현한다는 당위론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금융산업 발전을 저해해 온 것은 물론, 금융시장에 필수불가결한 감시와 규제시스템마저 약화시키는 등 많은 부작용을 초래해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일부에서는 공기업의 고질병인 무사안일, 복지부동 풍토를 깨기 위해 실력 있고 역량 있는 외부 인사를 투입해 판갈이 해야 한다는 긍정론을 옹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실은 고위관료나 정치색채가 짙은 인사가 전문성이나 실력보다는 전리품과 보은성에 얹혀 낙하됨으로서 사장(CEO)-노조-감사로 이어지는 3각 커넥션에 말려 안주하게 되고, 적당히 임기를 채우고 떠나는 악습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꽃보직’공공기관 감사 56%가 보은인사
박근혜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사기를 떨어트리는 낙하산 인사가 새 정부에서는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임 후에도 공공기관 인선 기준으로 ‘국정철학 공유와 전문성’을 누누이 제시해 왔으며, 그때마다 청와대 대변인도 나서서 “박근혜 정부에서 낙하산 인사는 없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다짐은 곧 허구로 드러났다. 꽃보직으로 알려진 경제부처 산하 공공기관의 감사 절반이 이미 낙하산으로 투입돼 94개 공기업 감사의 56%가 전문성이 떨어지는 보은성 인사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기획재정부와 금융위원회 산하공기업의 경우를 보자. 수출입은행의 감사는 국민통합21과 17대 국회의원 출마 경력의 정치인이고, 조폐공사 감사는 한나라당 당직자를 지낸 청와대 행정관 출신이며, 기술신보 감사는 부산시의회 부의장 경력자다.

예금보험공사 감사도 청와대 민원제도개선 비서관이며, 코스콤 감사는 청와대 행정관, 주택금융공사 감사 역시 청와대 정책홍보비서관 경력자다. 군고위장성 출신도 있다. 한국감정원 감사는 청와대 경호처 군사관리관을 지냈고, 한국공항공사 감사는 공군 군수참모부장 출신이다.

철도공사 감사는 지방경찰청장과 경찰대학장을 지낸 고위 경찰간부 출신이며, 공정거래위원회 한국소비자원 감사는 충북일보 부사장 출신으로, 보은인사의 전형으로 꼽힌다. 낙하산은 민간영역에도 투하돼 대한건설협회 감사는 청와대 감찰팀장을 지낸 이가 선임됐다.

금융ㆍ공기업 CEO 내정자 대다수가 모피아 출신
이런 상황인데도 최근 주요 금융지주회사와 공기업 CEO에 모피아 출신과 관련 부처 고위관료 출신들이 대거 내정되면서 관치 논란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NH농협금융지주 회장, KB금융지주 회장, 여신금융협회장 등에 경제관료 출신들이 발탁된 데다 사장, 은행장들도 관료 출신들이 줄줄이 거명되고 있다.

또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에 국토해양부 차관 출신이, LH공사 사장에 국토부 출신의 경기도시공사 사장이 각각 기용되면서 노조 반발 등 잡음을 빚고 있다. 이밖에도 괜찮은 자리로 알려진 코레일, 한국수자원공사, 한국가스공사, 한국지역난방공사 등도 여지없이 관련 부처의 고위관료 출신들이 CEO로 거론되고 있다.

이는 박 대통령이 강조해 온 인사 원칙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현상이다. 이렇게 관치 논란과 낙하산 인사의 시비가 일자 마침내 청와대가 나서서 “현재 진행 중인 공공기관장 인선 작업을 중단하라”고 지시하기에 이르렀다.

차제에 박 대통령은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라는 사실을 되새겼으면 한다. 늦었지만 이제부터라도 관료나 공공기관장 인사 시 자신의 수첩에 올라있는 인물 외에도 예비후보 폭을 훨씬 늘려 두루두루 최고적임자를 찾아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물론 관료나 국회의원 출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배제하거나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지만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공공기관장으로 가는 건 확실히 정상이 아니다. 이렇듯 비정상적인 부분들, 국민과 언론이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운해 하기보다는 한 번 더 듣고 깊이 들여다보아 정상으로 돌려놓는 것이 옳다.

차제에 이미 내정설이 돌던 전직관료나 정치인들에 대해서도 자리에 걸맞은 전문성을 갖추고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등 대통령의 인사원칙에 맞는 인사인지를 깊이 가려야 할 것이다. 신의직장으로 알려진 한국거래소 이사장에 친박계 4선의원인 김영선 전 새누리당 의원(전 국회 정무위원장)의 내정설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노사정위원장에 김대환 교수 발탁은 탕평인사의 서막
이런 와중에도 박 대통령이 새 노사정위원장에 노무현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인하대 경제학부 김대환 교수를 발탁한 것은 매우 신선해 보인다.

김 교수는 노동부 장관 재임 당시 취약근로층에 대해 고용안정을 위한 법적보호를 강화하고, 고임금에 근로조건이 좋은 사업장은 고용의 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는 원칙에 입각해 비정규직 법안을 추진했으며, 대기업 노조를 비판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노사관계 및 노동정책과 관련된 이런 김 교수의 경험과 식견을 평가한 뒤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로드맵 마련 등 자신의 공약을 실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고 그에게 방점을 찍은 듯하다.

특히 김 교수의 발탁이 ‘상향식 추천’에 의해 성사됐다는 점은 매우 의미가 크다. 또 그가‘노무현 정부 사람’이었다는 점은 앞으로의 정부의 인사 추이를 가늠하게 한다. 지역과 진영, 내편 네편을 따지지 않고 능력과 전문성, 리더십을 보고 탕평인사를 하게 되리라는 기대와 박 대통령이 선거 때 약속한 국민대통합이 훨씬 가까워질 것이라는 희망이다.

청와대 비서실은 물론, 각 부처에서도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려서는 안 될 것이다. 하루빨리 인사 풀을 제도적으로 확충하고, 인사위원회의 철저한 검증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금융회사를 비롯해 공공기관장의 인선이 줄줄이 예정되고 있다. 예비 후보의 폭을 넓히다 보면 검증에 시간이 더 걸리고 인사가 지체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공기관장을 임명하면 3년의 임기를 보장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적임자를 골라야 하는 이유다. 과거 정부들의 인사패턴을 보면 대부분 권력실세 몇몇이서 공공기관 인사를 주무르고, 관료를 중심으로 우선 배려하는 등 끼리끼리 나눠먹기 식으로 진행됐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좋은 관치나 나쁜 관치도 이런 전례의 답습에서 무의식적으로 튀어나온 망발이 아닌가 한다. 박 대통령은 오늘날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이 정실인사, 관치의 산물임을 명심해야 하겠다. 그간 공공기관장은 고시출신에 전직 고위관료들이 상당수를 차지해 왔지만 공기업들은 빚더미에 올라 있거나 당장의 생존을 위해 대대적이고 근본적인 수술을 요구받고 있다.

이제 어떤 인사가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CEO가 돼야 하는지는 자명하다. 국정철학도 공유해야 하지만 전문성과 도덕성에 중점을 두어 경영효율도 따져야 할 것이다. 민간기업의 오너가 제왕처럼 군림할 수 있는 것은 확고한 책임경영체제 아래 경영의 효율성을 깊이 따지고 경영성과에 대해 엄격하게 평가하고 보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공기업의 최고경영자는 인사, 조직을 과감히 뜯어 고치면서 영업에도 공격적인 속도를 낼 수 있는 전문적인 지식과 비전을 지니고 도덕성을 겸비한 인사가 대거 발탁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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