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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 개인투자가 남석관 회장
“세상의 흐름을 읽으니 주식이 보여요!”
성공확률 0% 주식의 세계에서 성공이란 획을 이어간다!
2012년 12월 26일 (수) 10:40:05 이 윤 기자 lee@fnplus.co.kr

“30대 초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세상을 보는 눈’이었어요. 어릴 땐 몰랐는데 어른이 되면서부터 우리 부모님은 착하고 성실하게만 사셨지 세상 보는 눈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부터인가 어떻게 하면 세상의 흐름을 읽을 수 있을까 많이 고민했죠. 그런데 주식을 하고 세월을 살다보니 어느새 세상을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게 됐어요.” 개인투자가 남석관 회장의 말이다.

남 회장(53세)은 27살 첫 직장생활을 시작할 무렵 100만원으로 주식을 병행, 7년 후 마흔 되던 해 1000만원으로 전업에 돌입해 전업 13년차인 지금은 매년 5억원의 자금을 안정적으로 굴리며 연100%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그는 주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을 내다보는 경륜이라 말한다. 그래서인지 남 회장은 이제 세상을 배워가는 젊은이들에겐 주식을 권하지 않는다. 본인이 경험한 주식의 세계가 너무 혹독하고 치열해일까... 그가 겪은 세월을 통해 주식을 배워본다. 

주식과의 인연
27살 첫 직장생활 중 목돈 100만원으로 주식을 시작했다. 86년도 당시 내 월급은 30만원 정도였다. 첫 거래로 ‘협진양행’을 7400원에 사서 1만9600원에 팔았다. 학창시절부터 신문 보는 것을 워낙 좋아했던 나는 단순히 신문의 시세표만 보고 시작했을 뿐인데 갑작스런 결과에 뭐 이런 세상이 있나... 싶었다. 그때부터 주식과의 인연이 시작됐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 옛날 내가 처음 주식에 입문해 어리버리 할 때도 객장은 항상 발 디딜 틈 없이 미어터졌다. 어느 세대나 정보에 빠르고 앞서가는 사람은 항상 있는 것 같다. 그 후부터 주식은 한 해를 거르지 않고 이어왔다. 당시에도 주식을 곧잘 한다는 소리는 심심치 않게 들었다.

전업을 결심하기까지
직장생활을 하며 주식 말고도 병행한 것들이 많았다. 대학시절 야학으로 수학을 가르쳤던 나름의 경력으로 퇴근 후에는 학원에서 수학 강의를 했고, 주말에는 틈틈이 봉사활동도 했다. 워낙 가진 것 없이 살아왔던 터라 남들보다 두배, 세배 노력하지 않으면 남들만큼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중 나이를 먹으면서 체력적 한계를 느끼는 순간 이 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년과 미래를 생각하면서 취미로만 해오던 주식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도 없고, 정년도 없는 등 주식의 장점만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절대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전업을 결정하기 전 수개월을 고민했다.

그때 나이가 39살 말, 가장으로서 두 아이의 아빠로서 고민의 무게는 가벼울 리 없었다. 당시 아내는 내가 결혼 전부터 주식을 해온 것을 알고 있었고, 또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온전히 내 결정에 맡겼다.

수개월 한참 고민에 빠져있을 때 쯤 처음으로 집집마다 인터넷이 깔리기 시작했다. 데이트레이딩이란 말도 그 때 처음 나왔다. 우연치 않게 집에서도 주식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갖춰지고 나니 고민의 무게가 한결 가벼워 졌다. 

불혹의 나이에 전업, 새로운 인생에 도전하다!
마흔 되던 해 달랑 1000만원 가지고 전업을 시작하며 한 달에 20%의 수익을 예상했었다. 당시 4인 가족의 생활비가 200만원 정도 들었는데, 1000만원짜리 계좌 하나로 매달 20%의 수익을 내서 생활비를 주겠다는 생각은 지금생각해도 참 무모하다.

이전까지는 많진 않아도 일정한 날 들어오는 고정적인 월급이 있었지만 이젠 죽기 살기로 해야 하는 생계형 투자가가 됐다는 게 실감이 났다. 여유돈이 없다보니 매매할 때도 여유가 없어졌다. 클릭 한 번으로 자칫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과 집사람이랑 어떻게 사나... 하는 생각에 손이 떨렸다. 그때 종목이 아직도 기억난다. ‘한글과컴퓨터’였는데 결국 클릭을 했고, 그 달에 배 이상의 수익을 냈다.

주식을 장기간 하다 보니 어떤 날은 순식간에 벌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순식간에 반토막이 나길 되풀이했다. 그래서 전업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수익이 나면 바로바로 인출을 했다. 그렇게 1000만원으로 죽기 살기로 하다 보니 어느새 수익률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전업 시작 즈음 대출 빚 6000~7000만원이 있었는데 전업 2~3년 만에 그 빚을 모두 청산하고도 여윳돈 1억이 모여 있었다. 여윳돈이 생기고 나니 마음이 편해져 매매에도 여유가 생겼다. 마침 그 시기 투자한 1억이 연간 종합 8억을 회수하는 기회를 잡으면서 결정적으로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다. 그 해는 정말 최고의 해였다. 

최악의 고비
물론 고비도 있었다. 당시 카드 대란으로 코스피 지수가 1000까지 올라갔다가 480까지 떨어졌을 때다. 코스닥 공시만 철석같이 믿고 7000만원 정도의 현금을 모두 한 종목에 몰빵했다가 날리는 일을 겪었다. 주식한 이래 처음으로 심통도 생기고, 편두통도 생겼다. 전업 2년차에 겪었던 최악의 위기였다. 돌아보면 결국 전업 2~3년 안에 최악의 고비와 최고의 순간을 모두 겪은 셈이다.

그 시기 많은 고민을 했다. 내가 주식을 잘 못 시작한 건가? 아니면 내 실수인가? 이번 사태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결론은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분명히 그 전까지는 잘해왔고, 이번 사태는 절대적으로 공시를 믿은 결과였다.

당시는 장이 워낙 나쁠 때였는데 8분기만의 영업이익 흑자라는 공시만 믿고 그 주식을 샀다가 다음날 보니 거래정지가 돼있었다. 결국 주식을 팔아 치우려고 허위 공시를 낸 것에 내가 걸린 것이다. 과거 코스닥 시장은 쓰레기 같은 장이었다. 이런 횡령사건들로 인한 주주들 손해는 말도 못했다. 지금은 그나마 감시기능이 강화돼 많이 정화 된 수준이다.

상황이 이러했기에 재수가 없었던 것이지 실력의 문제는 아니라는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 때 처음으로 가진 돈을 모두 잃고 투자금이 없어서 3개월을 쉬다가 다시 250만원, 200만원 두 계좌로 새롭게 시작했다. 그랬더니 250짜리 계좌가 1년 뒤 1억이 되고, 200짜리 계좌는 3400만원이 됐다.

그때는 정말 미친 듯이 했다. 2주 만에 4배의 수익을 거둔 적도 있다. 운도 좋았던 것이 그때는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팽창하던 시기였다. 증권가를 둘러보면 그 때 큰 돈 번 사람들이 많다. 그 이후 주식에서 몰빵은 안한다. 엉터리 회사인지 아닌지 확인하고 또 확인하며 조심한다. 어떻게 보면 전업 2~3년차에 겪었던 크고 작은 경험들이 매매하는데 있어서 큰 가르침이 됐다. 나를 단련시키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 남석관 회장
스스로 터득한 노하우 공개

주식은 철저하게 자기에게 묻고 자기가 답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지금도 매매를 하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진다. 매매포인트는 항상 시장의 중심이 되는 것을 매매해야한다. 따라서 내가 보고 있는 종목이 시장의 중심이 되는가를 스스로 반문하며 매매한다.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중 하나가 눈에 잘 띠는 빨간색(상한가) 근처에 있는 종목에만 관심을 둔다는 것인데 그런 식의 매매는 피해야 한다. 매매 전에 반듯이 내가 보고 있는 종목이 시장을 벗어나있지 않은지 뉴스나 그래프 등을 통해 세밀하게 살펴보고 시장의 주도주임을 확신한 후 매매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메모 습관도 중요하다. 내가 어느 때 수익이 났는지, 아니면 어느 때 손실을 봤는지 등 당시 상황을 하나하나 기록해두고 수시로 들여다봐야 한다. 이는 실수를 줄여나가는 중요한 과정이다.

난 지금도 과거에 기록한 메모들을 들여다보며 좋았던 장의 느낌도 기억하지만 치명적인 실수를 범했던 상황까지 기억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과거보다 조금 여유로운 상황이 됐다고 해서 절대 치열함 없이 술렁술렁 하지 않는다. 세상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주식을 시작할 때부터 책을 통해 배우진 않았다. 그때그때 필요한 내용이나 모르는 용어 등은 인터넷을 활용했다. 경제학도가 아니기 때문에 낯선 용어들도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경제신문 뒤져가며 자연스레 익혀나갔다.

과거 줄기세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했을 때는 줄기세포에 관해서는 내가 전문가 수준이 될 정도로 찾아보고 또 찾아봤다. 그 정도는 돼야 그 분야 관련주를 매매할 수 있다. 이런 작업은 거의 하루장이 끝난 오후 시간에 많이 이뤄졌다. 매일매일 반복된 학습이 어느 순간 축적이 되다보니까 지금은 속도가 많이 빨라졌다. 그래서 이젠 뉴스를 보다보면 이 분야 종목이 제로가 될 것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이 바로 선다.

또한 난 정보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특히 고급정보 운운하며 수수료 원하는 사람들은 절대 상대하지 않는다. 주식판은 돈이 오가기 때문에 지저분한 일들이 많다. 돈은 깨끗하지만 그 돈을 가지고 장난치려는 사람들과 나쁜 생각으로 돈을 만지는 사람들 때문에 그렇다.

정보만 가지고 주식을 하면 안 된다. 가치투자의 첫째는 수급이고, 둘째는 미래가치다. 미래에 저회사가 많은 돈을 벌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주식이 계속 올라가는 거고, 이젠 돈을 벌만큼 벌어서 앞으로는 그만큼 벌기 어려워 보이면 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가치투자의 판단은 시장의 공감을 바탕에 둔 스스로의 판단으로 정하는 것이지 돌아다니는 근거 없는 떠돌이 정보에 휩쓸려선 안 된다. 단, 혼자만의 주관적인 생각과는 구분되는 다른 이들의 객관적 공감은 중요한 부분이다.

주식에서는 미래가치가 현실화되면 이젠 다음 미래를 예측하고 생각해야 한다. 그 배후엔 항상 시장 참여자들이 공감을 염두에 두고 매매를 해야 한다. 이런 시각으로 주식을 바라보면 영원한 호황도 영원한 불황도 없다. 세상이 변하면서 관심사가 달라지는 것뿐, 시대를 읽으며 어떤 쪽에 돈이 되는지를 생각하면 주식이 쉬워 진다. 

매매 원칙
주식하고 결혼하지 말라는 것! 즉, 한 주식을 고집하며 오래 끌어안고 있지 말라는 뜻이다. 주식 할 땐 생각을 오픈해야 한다. 주식은 양날의 칼 같은 양면성이 있다. 조심하되 겁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베팅타이밍을 맞춰 매수 시엔 과감해야 하지만 욕심을 컨트롤하며 적당히 빠지는 감각도 필요하다. 아니라는 판단이 들면 과감히 버릴 수도 있어야 한다. 고집스럽게 한 종목만을 고집하다보면 망하기 쉽다. ‘주식하고 결혼하지 말라’는 말라는 뜻은 종목과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 요즘처럼 매매가 힘든 시기에는 쉴 줄도 알아야 한다. 이는 아주 중요한 얘기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벼락이 치나 주구장창 매매에만 매달리다 보면 수익도 안 나고, 오히려 났던 수익을 까먹기 십상이다. 이런 때는 시장을 지켜보며 흐름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보통 개미들은 흔히 시장을 buy냐 send냐 아니면 관망(wait&see)이냐로 나누는데, wait 시기에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기 보다는 시장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한 공부를 해야 한다. 급하게 마음먹지 말고 다음에는 어떤 장이 펼쳐질까에 대해 예측하고 고민하는 시간을 통해 자신만의 노하우가 쌓이게 되는 것이다. 

조언 한 말씀
주식은 클릭 한 번으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편차가 큰 분야다. 그러기에 젊은 친구들이 주식에 뛰어드는 것은 말리고 싶다. 주식을 하다보면 다른 곳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진다. 주식으로 돈은 벌 수 있을지 모르지만 꾸준히 수익을 내기도 어려울뿐더러 젊은 날 거쳐야하는 소중한 과정들을 놓쳐버리기 쉽다. 젊은 친구들은 자기본연의 일을 통해 세상 보는 눈을 키우고 난 다음 주식에 입문해도 늦지 않는다.

물론 주식을 통해 세상을 알게 되는 긍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는 시간관리, 자기관리라는 기본이 갖춰졌을 때 얘기다. 자칫 잘못하면 하루라도 매매하지 않으면 불안한 매매중독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게임중독과 비슷한 증상이다. 때문에 어떤 일을 하든 자기컨트롤을 통해 소양을 쌓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젊을 시기에 세상의 변화와 흐름에 관심을 갖고, 그 흐름을 예측해보려는 노력은 꼭 주식이 아닌 인생을 살아가면서도 많은 도움이 된다. 

남 회장을 지금에 이르게 한 바탕에는 긍정의 힘이 있다. 이는 어렵게 공부하던 시절부터 길러진 소중한 유산이기도 하다. 특히 주식은 시장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중요하다. 그래야 불황에도 길이 보이고, 그래야 수익도 난단다. 어느 정도 주식의 경지에 오른 남 회장에겐 이제 절박한 욕심은 없다. 하지만 치열함 없인 안 되는 것이 주식이기에 아직도 그의 사전엔 대충이란 말은 없다.

주식을 장기적으로 했을 때 성공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는데 개인투자가 남석관이란 이름 앞에는 ‘성공’이란 수식어가 무색하지 않다. 스스로를 회장이라 부르며, 이젠 그 호칭에 걸맞게 살아가고 있는 남 회장은 65세가 될 때까지 지금의 페이스를 유지할 자신이 있다며 웃음 짓는다.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주어지지 않는 정년 없는 풍요로운 미래는 그에게 주어진 삶을 치열하게 달려온 귀한 시간의 보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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